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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 리더십

  • 날짜
    2010-09-27 15:43:46
  • 조회수
    1288
‘남자의 자격’ 박칼린의 리더십


커다란 강당을 메운 관객들 앞에서 합창이 끝나자마자 합창단은 눈물바다가 됐다. 한국방송의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의 ‘남자 그리고 하모니’의 마지막, 여덟 번째 편에서 지켜본 광경이었다. 그 눈물바다의 한 가운데서,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지휘자, 박칼린이었다.

 눈길을 사로잡은 한 사람, 박칼린

 일 요일 저녁,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남자의 자격 합창단’의 마지막 합창대회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이 합창단은 2010년 7월부터 방송되고 있는 ‘남자 그리고 하모니’편을 위해 결성된 것이다. 이경규, 김국진, 윤형빈 등 기존 출연진에 공모를 통해 채용된 합창단원을 포함해 모두 3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달여 동안의 연습을 거친 이 합창단이, 마지막으로 거제전국합창대회에 출전하는 것으로 8회의 프로그램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청하는 내내, 나의 눈을 사로잡는 한 사람이 있었다. 지휘봉을 잡은 박칼린씨, ‘칼린쌤’이었다.

 박 칼린씨는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최고의 뮤지컬 음악감독인데, ‘명성황후’ ‘오페라의 유령’ ‘사운드 오브 뮤직’ ‘페임’ ‘렌트’ ‘시카고’ ‘미녀와 야수’ ‘노틀담의 꼽추’ ‘아이다’ ‘한여름 밤의 꿈’ 등 국내 뮤지컬사에 획을 긋는 작품들의 음악감독을 맡은 사람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리더십이었다. 합창단 뿐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든지 배우고 써볼 만한 리더십을 그는 끊임없이 보여줬다. ‘박칼린 리더십’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하다. 경영자라면, 벤처기업가라면, 팀장이라면, 프로젝트 매니저라면, 그의 리더십을 한번 눈여겨 볼 만하다.

 최악의 조건에서 시작한 팀

 박칼린의 합창단은 사실 최악의 조건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째, 자원의 제약조건이 엄격했다. 합창단원은 모두 파트타임이다. 모두 본업이 있고, 부업으로 이 일을 한다. 게다가 한정된 기간 동안만 일한다. 딱 두 달여 동안, 부업으로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둘째, 인센티브 시스템이 취약했다. 합창단원에게 주어지는 외적 동기는 거의 없다. 경영학은 개인이 일을 통해 얻는 인센티브를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의 두 가지로 나눈다. 외적 동기에 해당하는 것이 금전적 보상, 소속 조직에서의 승진 등이다. 이런 직접적, 단기적 보상은 거의 없었다. 특히, 리더인 박칼린을 따를 때 주어지는 보상은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셋째, 팀웍이 거의 없는 팀으로 시작했다. 합창단은 급조된 팀이다. 인적 구성은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포괄한다. 20대부터 50대까지 있었고, 연예인도 있는 반면 KBS 행정 직원도 있었다. 실력과 성격도 들쭉날쭉이다. 성악과 출신 준 전문가와 뮤지컬 배우가 있는 반면, 개그맨처럼 전문성과 거리가 먼 사람도 많았다. 팀웍은 아예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된다.

 세 가지 조건에 해당하는 팀에서 일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이런 조건은 많은 조직에 해당된다.

 우 선 기업에서라면 프로젝트 형식으로 운영하는 태스크 포스 조직이 여기에 해당한다. 모두 본 소속 부서가 있고, 태스크포스에서 성공하고 태스크포스 팀장에게 인정받는다고 해도 본 소속 부서에서 승진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늘 여기저기 다양한 부서에서 사람을 끌어오니, 팀웍도 거의 없다.

 비영리조직의 경우도 여기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문성을 갖춘 자원봉사자를 활용하는 조직이 그럴 것이다. 모두 본업이 있고, 인센티브가 거의 없으며, 팀웍도 부실하다.

 이 뿐 아니라, 프로젝트 형태로 운영되는 많은 일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태스크포스 조직도 이럴 것이고, 대학의 연구프로젝트도 이럴 수 있고, 컨설팅 프로젝트도 비슷할 수 있다.

 박칼린표 리더십의 세 가지 전략

 이런 조건을 박칼린은 세 가지 전략으로 극복했다.

 첫째, 자원 제약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명확한 성과, 데드라인, 각자의 역할을 제시했다. 성과는 합창대회 진출 가능한 수준의 작품이었고, 데드라인은 합창대회 날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도 분명하다. 예를 들면 선우나 배다해에게는 가혹할 만큼 완성도 높은 음악을 요구하지만, 이경규나 김태원에게는 ‘큰 형님’ 또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만을 기대하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리더가 결정한다.

 본업이 따로 있거나, 주요 관심사가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할 때, 리더는 조직이 낼 성과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해야 할 지에 대해 불명확하면, 서로 다른 방향의 일을 열심히 할 수가 있다. 제약조건이 큰 조직에서는 성과의 명확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 성과를 이루는 데 필요한 각자의 역할까지 명확히 정의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둘째, 취약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극복하기 위해 내적 동기를 극적으로 유발했다. 합창단원들에게 내적 동기는 잠재되어 있었다. 텔레비전 출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명성도 한 가지다. 신인 가수들에게는 좋은 동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 만족도 큰 내적 동기다. ‘파이터’ 서두원이나 방송사 경영담당직원에게는 하고 싶었던 노래를 텔레비전과 무대에서 할 수 있는, 평생 잊혀지지 않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를 활용해, 박칼린은 조직운영 과정에서 끊임없는 격려와 질책을 통해 합창단을 독려한다. 합창단은 이완과 긴장의 연속이다. ‘즐겨라!’와 ‘긴장해라!’라는 두 가지 메시지가 계속 엇갈려 나온다. ‘멋지게 잘 해냈다, 이제 즐겨라’고 하더니, 다음 회에서는 ‘정신이 다른 데 가 있다, 나 혼자만 긴장한 것 같다, 긴장 좀 해라’고 주문한다. 일관성 없는 메시지인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조직을 계속 긴장, 이완하면서 내적 동기를 계속 유발하게 된다.

 또한 조직 내 경쟁을 통해 이런 긴장을 고조시킨다. 예를 들면 솔로를 놓고 선우와 배다해가 벌이는 경쟁은, 지휘자가 유발한 측면이 크다. 이 과정에서 두 명의 출중한 가수에게는 ‘라이벌과의 경쟁’이라는 새로운 내적 동기가 생겼을 것이고, 다른 합창단원들에게 미치는 긴장의 확산 효과도 컸을 것이다.

 셋째, 팀웍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박칼린은 채용부터 팀웍에 신경을 쓴다. 초기 합창단 선발 때, 실력도 실력이지만, 팀웍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을 우선 단원으로 채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핵심역량에 대한 강력한 top-down 리더십을 발휘하며, 음악과 관련해서는 팀 내 다른 리더십을 배제한다. ‘나를 쳐다봐라’ ‘튀지 말아라’라는 말을 반복한다.

 다만 음악 외 부분에 대해서는 리더십을 과감하게 이양한다. 예를 들어 ‘형님 노릇’은 이경규에게 적극적으로 넘긴다. ‘율동’은 스태프인 최재림에게 적극적으로 넘기고, 때로는 단원들의 의견도 적극 수렴한다. 그러나 핵심역량인 ‘노래’와 관련해서는, 아무리 멋진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창법도 일단 평균화하고 가다듬는다. 리더십을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프로젝트형 조직에 잘 맞을 경영 리더십

 이런 리더십은 분명히 경영에 큰 시사점을 준다. 특히 프로젝트형 운영 조직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팀원 모두 서로 본업이 있고, 각자의 인센티브 시스템이 따로따로 있으며, 인적 구성이 다양한 조직일수록 잘 맞을 것이다.

 예를 들면 비영리단체는 대부분 이런 특성을 갖고 있다. 또 정부에서나 기업에서나 태스크포스팀은 이런 특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창업 초기 조직은 이런 특성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합창대회가 끝난 뒤 단원들이 흘린 눈물에서,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감동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테고, 충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대부분의 프로젝트 조직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헤어지거나 관심 없는 상태에서 흐지부지 끝나고 만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었을까? 그게 내가 충격받은 이유였다.

 갓 창업한 벤처기업이든, 태스크포스팀이든, 비영리단체이든, 사람들이 헤어질 때 우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면.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그리고 이 조직이 아니라면 체험하지 못했을 법한 특별한 경험 때문에 그들을 울릴 수 있다면. 리더라면 그런 조직을 만드는 꿈을 꾸어볼 만하지 않은가. ‘칼린쌤’의 매력에서 그 방법을 배워 보자.

 한 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이 리더십은 모든 조직에서 통할 수 있을까?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조직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늘 프로젝트이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일상적 관리업무, 루틴이다. 프로젝트는 늘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루틴을 경영하는 것은 프로젝트를 경영하는 것과 다르다. ‘칼린쌤’의 리더십은 훌륭한 프로젝트 경영 방법인 것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